프로야구 제 7구단으로 1986년 창단해서 1993년까지 짧고 굵게 활약했던 빙그레 이글스. 94년부터는 모기업인 한화로 이름이 바꼈지만 그래도 빙그레 이글스의 추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방그레 방그레~ 빙그레하면 혹자는 바나나맛 우유하고 아이스크림 밖에 생각 안 나는줄 몰라도 나는 빙그레 이글스하면 3가지가 떠오른다. 좀처럼 보기힘든 눈에 확 띄는 촌스런 주황색 줄무늬 유니폼과 다니아마이트 타선, 그리고 우승 못하는 팀...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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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는 86년 배성서 감독을 초대감독으로 해서 좌투좌타의 이강돈과 이상군, 한희민, 강정길, 김상국을 중심으로 해태에서 온 유승안과 일본중경고를 졸업한 33살의 고원부, 83년 삼미에서 엽기적인 427.1이닝을 투구하며 30승16패를 기록했던 장명부를 델고오고 여기에 황병일, 전대영, 이광길, 김한근, 김종문, 김성갑까지 합세해서 의욕넘치게 출발했다.
 
허허허나...신생팀의 한계랄까...31승 76패 1무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기대를 모았던 장명부는 1승18패를 기록하고는 은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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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도 47승 54패 4무로 6위에 그쳤지만 심상찮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선수들이 속속 합류한 것이다. 좌투좌타로 수비가 좋고 재치있는 플레이를 하는 이중화, 데뷔 첫 해부터 22경기 연속안타의 기록을 세우고 .335의 타격 3위로 신인상을 수상한 이정훈, 연습생 신화의 장종훈, 이동석, 김대중....그리고 85년 해태에서 13승을 올렸던 강만식도 합류했다.
 
87년 유승안은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고원부는 .324의 타율로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이강돈은 8월 27일 OB전에서 역대 2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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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는 김영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신인으로 한용덕과 장정순, 조양근이 가세했고 재일동포 김홍명도 있었다. 2년간 하위권을 맴돌던 빙그레는 타선에 불을 붙이며 65승 45패 1무로 2위로 뛰어올랐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3연승을 거두며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해태에 2승4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2년차 이동석은 4월 17일 국보급투수 선동열을 맞아 5탈삼진 무사사구로 1대0 승리를 이끌며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이정훈과 유승안은 올스타에 뽑혔고, 장종훈은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이강돈과 이정훈은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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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빙그레는 또다시 좋은 선수들이 줄줄이 가세했다. 송골매 송진우와 강석천, 진정필, 이종호...서서히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갖추기 시작했다. 고원부는 .327의 타율로 타격왕을, 유승안은 타점왕을, 이강돈은 당시 한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인 137개의 안타로 안타왕에 올랐고 유승안과 이강돈은 올스타에, 이강돈과 고원부, 유승안은 골든글러브의 영광도 안았다. 여기에 발 빠른 이중화는 4월 22일부터 8월 25일까지 21경기 연속도루의 대기록도 작성했다.
 
시즌 성적도 71승 46패 3무 0.604의 높은 승률로 레귤러 시즌 1위를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난 해태...1차전에서 이상군이 7.1이닝을 무실점 호투하고 선동열에게 유독 강했던 이강돈이 1회초 홈런을 쳐내며 뜻밖에 4-0 승리를 거둬 우승의 단꿈에 젖었으나 해태에는 이강철, 신동수, 문희수, 김정수 등 좋은 투수들이 즐비했고 또다시 1승4패로 패하며 2번째 준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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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지화동이 신인으로 합류한 빙그레는 68승 50패 2무 3위의 성적을 기록한 후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2연패하며 쓴잔을 마셨다. 그러나 90년은 값진 한해였다. 장종훈이 28홈런 91타점 장타율 .545의 기록으로 3관왕을 차지했고, 이강돈은 146안타로 안타왕 2연패와 타격2위에 올랐으며 강석천은 8월 4일 태평양전에서 통산 4번째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다.
 
여기에 루키급이었던 송진우가 11승7패27세이브로 구원왕에 올랐고 한용덕도 13승을 달성했다. 유승안과 이강돈이 올스타에 뽑혔고 이강돈, 이정훈, 유격수 장종훈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성과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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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빙그레는 이제 다이나마이트 타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3살의 장종훈은 유격수에서 지명타자로 변신하며 35홈런 114타점 160안타 장타율 .640으로 4관광에 올랐고 35홈런 21도루로 20-20클럽도 달성하였다. 이정훈은 .348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한용덕은 17승을 올리며 에이스로 떠올랐다.
 
72승 5무 49패로 2위를 기록한 빙그레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3승1패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해태를 맞이했으나 해태 마운드에는 선동열과 김정수, 신동수, 이강철이 있었고 타선에는 장채근, 김성한, 한대화, 박철우, 이호성, 김종모, 홍현우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4연패로 3번째 준우승을 차지했다.
 
빙그레는 장종훈과 이정훈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이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제1회 한일수퍼게임에서 송진우(4차전)와 한용덕(5차전)이 우수투수에, 이정훈(1,3,6차전)이 우수타자에, 장종훈(5차전)이 MVP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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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빙그레는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완성했다. 이정훈, 이중화(고원부), 이강돈, 장종훈, 강정길, 유승안, 강석천, 김상국, 조양근.....
 
이정훈은 25홈런 21도루로 20-20클럽에 가입하였고 .360의 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고 장종훈은 당시 역대 최다홈런인 41홈런 119타점 장타율 .659로 3관왕을 차지하며 MVP에 올랐고 이강돈도 .320으로 타격 5위에 올랐다.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은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장종훈과 이정훈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야말로 다이나마이트 타선이었다. 146개로 팀 최다홈런을 기록했고 강석천은 한경기 최다 2루타인 4개를 쳐내기도 하였다. 여기에 마운드도 높았다. 팀 최고 방어율인 3.68을 기록했고 송진우가 19승8패 25세이브로 다승과 구원왕을 동시석권했고 루키였던 정민철은 14승4패7세이브, 이상군은 10승2패2세이브, 장정순도 14승7패2세이브를 올리며 우승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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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에서 81승 43패 2무 승률 .651의 엄청난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고 해태도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패했다.
 
4번째 도전에 나선 빙그레. 믿었던 1차전 선발 송진우가 초반 난타 당하며 박동희와의 대결에서 완패했다. 이어 2차전 정민철과 윤형배... 누가봐도 빙그레의 승리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 다이나마이트 타선은 잠을 자고 8회까지 호투하던 정민철이 볼넷을 내주자 김영덕 감독은 어이없게도 전발 난타당했던 송진우를 내보냈고 결국 4타자 연속안타를 맞으며 0-3으로 또 패하고 말았다.
 
3차전...한용덕과 윤학길이 나왔다. 여기에 김영덕은 송진우를 5회에 또 투입했다.-_-;;;결국 전준호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3-4로 끌려가서 혼자 3패를 당할 위기였으나 9회 마지막 공격에서 지화동의 적시타와 임주택의 내야안타로 5-4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4차전에 다시 나선 정민철과 신인상 염종석. 그러나 정민철이 2이닝만에 강판당하며 마운드가 무너져 다시 패했고 5차전에서는 박동희의 벽을 못넘고 다시 4번째 준우승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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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화려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던 시절은 가고..김영덕 감독을 경질시켜야 된다는 강력한 여론에도 한번도 기회를 주었으나 1993년 빙그레는 이전의 빙그레가 아니었다.
 
장종훈, 이정훈, 이강돈이 돌아가면서 부상자 명단에 오르내리며 단 한번도 3명이 동시 출장을 못 했으며 슈퍼루키로 입단했던 지연규와 구대성이 부진을 면치 못하며 2승에 그쳤고 10연패까지 당했다.
 
결국 61승 61패 4무로 5위에 그쳤고 93년 11월 명칭이 한화 이글스로 변경되면서 감독도 강병철 감독이 취임했다. 그나마도 93년에는 정민철이 13승3패와 승률왕을 차지하며 에이스로 부상했고 이강돈이 올스타전 MVP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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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그리하여 아련한 추억속의 빙그레 시대는 끝이났다. 재미난 투구폼의 한희민, 제구력의 달인 이상군, 한용덕...그리고 강정길, 이정훈, 이강돈, 조양근, 고원부, 이중화...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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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송진우는 8회말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정회열의 타구를 우익수 이중화가 실책을 범하며 퍼펙트 게임이 무산되었다.-_-결국 역전패당했으니 그걸 잡았더라면 빙그레가 방그레 우승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 목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0-20 00:54)

삐따기

김진웅도 플옵에서 3이닝 퍼펙트를 기록하기도 했었죠..

2004/10/19   

珤雅좋아^o^

와우~~~~~~~~
오렌지색 유니폼 당시에는 촌스러웠는데
지금보니 멋지네요...........오렌지색 줄무늬도 좋고^^

2004/10/19   

deru

저당시에는 대전의 야구열기도 대단했죠....

2004/10/19   

퓨어리

이정훈 선수 저도 기억납니다. 별명이 악바리인 선수. 투지가 넘치는 선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2004/10/19   

GG김태균

아...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2004/10/19   

웰컴투괴수랜드

호랑이만 없었어도;;

2004/10/19   

빨강독수리[盟]

유니폼 조쿠나...+_+

2004/10/19   

GG김태균

유니폼 보니 옛날에 빙그레 선수들 잔뜩 나와서 찍은 장판광고가 기억나네요...^^

2004/10/19   

빨강독수리[盟]

레드 이글스 데이 이런거 말구 추억의 유니폼 데이 좀 하지..
작년 비룡과 일각수의 삼미 논쟁이야 그럴수 있다치지만...
어차리 빙그레와 한화는 형제기업이니...ㅡ,.ㅡ

마지막으로 빙그레 유니폼 입은 장종훈과 회장님을
보고 싶네요...

2004/10/19   

珤雅좋아^o^

근데 보통 우리나라 구단들이 유니폼 디자인할때 다른 나라팀을
참고하잖아요....
이 유니폼은 어디에서 참고 했나요.....아니면 독자 디자인가요.....

2004/10/19   

빨강독수리[盟]

그리고 이승엽이 모든 면에서 장종훈을 추월했는데(통산기록빼고) 20-20만은 장종훈이 윈이네요 ^^;;

2004/10/19   

珤雅좋아^o^

헉.....그리고 보니 공중부양 이만수도 있었네..ㅋㅋ

2004/10/19   

deru

유대감님의 파워있는 스윙사진도 재밌고...두번째 약간마른 장종훈과 펄쩍 뛰고있는 만수형님 사진도 볼만하군요...

2004/10/19   

한화v2

YDG는 선동렬선수에게 만루홈런 쳤을때 편의점 가판대에서 기사 읽었던 생각이 나네여...

2004/10/19   

diamond

만수아저씨의 도루(?)사진도 있군요.......잘봤습니다.......

2004/10/19   

장종훈과 현재윤

와~ 글 잘봤습니다^^ 빙그레 정말 그리워요~ 유니폼두 ㅎㅎ

2004/10/19   

흰머리수리

빙그레이글스 정말 그리운 이름이죠...
만년 2위팀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패기와 모든 선수들의 열심히 하는 모습 팬들에게 공감을 주었습니다.
안타까운건 이광길, 김성갑이 모두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된후...
내야진이 붕괴되고...이게 지금까지 약점이라는 거죠...
다 김영덕의 북일챙겨주기 때문입니다...

2004/10/19   

흰머리수리

위에 강석천 환호하는 사진
선동렬에게 2점홈런 치고 환호하는 사진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9회에 다시 역전당하죠 흑흑흑...

2004/10/19   

이글이글~

아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그 이글이글 타오르던 시절의 이글스의 기억들
특히 정민철 선수의 신인답지않은 투구속도 변화신공에 롯데타자들이 농락당하자
끈질기게 나와서 항의해 민철 선수의 리듬을 흐트려놓아
결국 신인의 한계를 내보이며 무너진 민철 선수
그리고 얼마 뒤 감독으로 부임한 강병철 감독
어차피 감독 부임할거면 빙그레 시절에 우승한번 시켜주시지 T.T

2004/10/19   

이글이글~

그리고 저때는 프로야구 열기가 높았던 점도 있었지만
이글스 내에 유난히 뉴스 메이커가 많았었죠
저 우에 쪼끔은 곤난한 포즈로 인상쓰고 계신 이정훈 코치님은 항상 허슬 플레이로 다음날 신문에 오르내리셨고
최다 안타 타이틀을 따신 이강돈 코치님은 그 어정쩡한 폼과 갖은 일화들(저기 나와있는 싸이클링 히트가 믿지못할 울 나라 일기예보를 믿고 동료 선수와 날이새도록 술을 퍼마시다가 어이없게도 날씨가 쾌청해져 술냄새 풍기며 정신없이 타격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기록이 되었다는 --;)
제가 참으로 좋아했던 그 분(ㅡ.,ㅡ)도(아 저는 아직도 그 시절을 못있고 선수였던 그 분을 좋아합니다 ^^;) 심판전지훈련에서 심판교육을 했던...("아 상군 바깥쪽 꽉 찬 낮은 코스 반 개 빠진데로 한 번 넣어봐" 이런 식으로요) 그 당시 홈런 수에 비해 타율이 낮았던 황대연 선수가 푸념섞인 말로 자기도 딴팀가면 중심타선에 낄 수 있다고 한 말이 기사화 될 정도로 화제도 많고 주목도 많이 받던 재미난 팀이었는데요 어찌된게 선수가 많이 바뀐 것도 아닌데 한화로 와서는 '한화스럽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의 팀이 되었는지.... 비록 우승은 했지만 쩝

2004/10/19   

그때가좋았지

고원부는 도대체 몇살에 타격왕에 오른건지..
92년 그 어느 해보다 우승을 예상했던건 상대가 롯데였기 때문이죠.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롯데가 붙었을때 모든 빙그레 팬들은 롯데가 이기길 바랬었죠. 정규시즌 기록이 롯데에는 많이 앞섰지만 해태에는 많이 약한 모습이라. 롯데가 올라온거 보고 '드디어 우승이다' 하고 정말 좋아했는데.. 그리 무너질줄은 정말..
그 다음해는 어떻게 전부 망가질수 있었는지... 타자중엔 강정길,김상국선수, 투수중엔 정민철 선수 빼고 모두 맛이갔었다는 정민철 선수 승률왕할때는 방위병이기도 했죠.
저후로 무려 7년을 기다렸군요. 초딩때 못이룬 염원을 대학때 이룬 그 기분 아실려나..

2004/10/19   

불사조를그리며

천안북일에서날렸던 조양근.. 프로에서 선수생활이 짧았던 이유가 뭔가요?

2004/10/20   

흰머리수리

뭐 조양근 말도 하지마세요..
아마 빙그레올드팬중에 조양근 좋아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김영덕감독이 이 인간 챙겨줄려고...이광길 트레이드시키고...
김성갑마저 트레이드시키는 바람에...빙그레 내야 초토화되고...
91,92준우승할때 외야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글구 조양근 본인도 빙그레에서 5시즌동안(93년 이국성과 트레이드...
이국성 한화로 와서 제몫 다해줬습니다.) 한번도... 집중력있게 시즌을
마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간에 이광길과 김성갑의 트레이드 왜 당시 빙그레가 그런 닭짓을
했나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참고로 둘 다 창단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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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볼에서 퍼온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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