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사태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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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프랑스 람부예에서 개최되었던 분쟁당사자들간의 협상에서 신유고연방공화국의 코소보의 자치권회복과 휴전감시를 위한 NATO군의 코소보 배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코소보평화안이 마련되어,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이를 받아 들였으나 세르비아공화국은 NATO의 거듭되는 공습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행위와 공격이 더욱 거세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월 24일 미국이 주도하는 NATO는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세르비아인들의 학살행위를 저지하고,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평화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유고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여 수차례에 걸친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NATO공습에도 불구하고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결사항쟁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인들을 코소보에서 완전히 몰아내려 하고 있다. 이미 50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추방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코소보는 어떤 지역이며 코소보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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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는 1974년부터 유고연방의 하나의 자치주로 유지되어 왔었는데 1989년에 현재 세르비아공화국의 대통령인 밀로셰비치가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의 사용도 금지하는 등 탄압조치를 취하자 이에 반발하여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총파업을 계속하고 자치권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강경주의자들은 코소보의 독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코소보의 인종분포를 보면 총 인구 약 235만 중에 알바니아인이 180만(77%)으로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세르비아인이 약 30만(13%)에 불과하나 행정관서의 대부분의 주요 직위를 차지하고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을 통치하고 있는 셈이다.
 
인구 57만명의 몬테네그로인들이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데 반해 180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자치주로 만족하지 않고 독립을 갈망하면서, 1차적으로 알바니아인들은 과거의 자치권을 되 찾기에 전심전력하는 가운데 세르비아인들로부터 축출대상이 되고, 인공청소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르비아인들은 알바니아계주민들에 대하여 무자비한 무력진압을 시작하자, 이에 반발한 알바니아계 주민들과 세르비아정부군간에 치열한 내전으로 진전되고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게 되었다.
 
 
 
코소보의 평화협상안은 어떤 것인가?
 
지난 2월, 프랑스 람부예에서 개최되었던 분쟁당사자들간의 협상에서 코소보의 자치권과 휴전감시를 위한 NATO군의 코소보 배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코소보평화안이 마련되었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이를 받아 들였으나 세르비아공화국은 NATO의 거듭되는 공습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행위와 공격이 더욱 거세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월 24일 미국이 주도하는 NATO는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세르비아인들의 학살행위를 저지하고,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평화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유고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것이다.
 
NATO공습에도 불구하고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결사항쟁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인들을 코소보에서 완전히 몰아내려 하고 있다. 이미 50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추방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왜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으며, 여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에 집착하는 이유는 코소보가 세르비아인들이 14세기에 건설하였던 세르비아왕국의 중심지였고, 유서깊은 종교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1389년에 오스만 터키와 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10여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전사한 지역으로서 그야말로 세르비아인들의 원한이 서려 있는 성지(聖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스만 터키에 패배한 세르비아인들은 북쪽으로 쫓겨났고 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던 것이다. 현재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만약 코소보가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독립되면 인접국인 알바니아공화국에 귀속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코소보사태가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에 상당히 연유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권력의 유지강화에 집착하고 있는 밀로셰비치는 대세르비아주의를 표방하고 [세르비아민족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내부 불만을 봉쇄하고 장기집권의 기반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유고 비극의 역사적 배경
 
역사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는 여러민족들로 구성된 유고연방이 1945년부터 45년간 비교적 안정된 연방국가체제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1990연대에 공산권의 붕괴와 동. 서 냉전의 종식을 배경으로 유고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공화국들이 각각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에 빠져들었고, 백인들이 개탄하는 [인종청소]라는 살육전이 벌어졌다.
 
유고의 이러한 민족간.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물론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수백년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고 또한 쉽게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유고의 비극은 크게 두가지 원인에 연유한다.
 
하나는 이 지역내 여러 민족간, 그리고 종교간 갈등.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서의 강대국들의 세력각축이다.
 
그런데 민족간 갈등과 강대국들간의 각축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지역내 민족들간의 갈등. 대립이 주변강대국들의 개입과 이들 국가간의 각축을 초래하였고, 또한 강대국들의 팽창정책과 상호간의 각축이 지역내에서 민족간 및 종교간 대립을 초래하고 격화시켰기 때문이다.
 


유고슬라비아는 어떤나라인가?
 
유고슬라비아는 남부(유고) 슬라브민족국가(슬라비아)라는 뜻이다. 슬라브민족의 대부분이 러시아를 중심으로 북부지역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하여 6세기경 세르비아인을 중심으로 발칸반도에 정착한 슬라브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임을 상징하는 나라의 명칭인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슬라브민족인 세르비아인만의 터전이 될 수는 없었다. 세르비아인외에도 잡다한 인종들이 분포되어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비극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지역내의 민족별 분포비율을 살펴보면, 세르비아인 약42%, 크로아티아인이 23%, 슬로베니아인 9% 외에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등이다.
 
유고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나라인가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짐작이 갈 것이다.
 
유고는 하나의 국가, 2개의 문자(칼릴문자, 러시아문자), 3개의 종교(그리스 정교, 로마카톨릭, 회교), 4개의 언어(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5개의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6개의 공화국(세르비아공화국, 몬테네그로공화국, 크로아티아공화국, 슬로베니아공화국, 보스니아공화국, 마케도니아공화국), 7개의 접경국(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알바니아)으로 표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공화국별로 구분되어 있지 못하고 각 공화국에 흩어져 살고 있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공화국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세르비아공화국에는 세르비아인 대부분(66%)이지만 알바니아 14%를 비롯 기타 민족이 고루 고루 섞여 있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에는 회교도인 43%, 세르비아인 32%, 크로아티아인 17%이고, 크로아티아공화국에는 크로아티아인 75%, 세르비아인 12%이고, 마케도니아공화국의 경우 마케도니아인 67%, 슬로베니아공화국은 슬로베니아인이 90%, 그리고 이번 사태의 장본인격인 세르비아공화국의 자치주였던 코소보에는 알바니아인 77%, 세르비아인 13%, 또 다른 세르비아공화국의 자치주인 보이보디나에는 세르비아인 54%, 헝가리인 19% 등 잡다한 인종들이 각 공화국에 얽히고 설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이번 사태의 주역(主域)인 코소보의 인종분포율을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세르비아공화국의 자치주인 코소보의 인구는 약 235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세르비아인은 30만(13%)에 불과하고, 이방민족인인 알바니아인들이 대부분(180만-77%)으로서 이것이 이번 사태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지역에는 다양한 종교가 신봉되고 종교간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바 이것 역시 불행한 역사의 유산이다.
 
1389년부터 500여년간에 걸친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아온 남부의 슬라브민족은 그리스정교와 회교를 신봉하게 되었고, 오. 흥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북부의 민족은 기독교(카톨릭포함)를 신봉함으로서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스정교신봉자가 41%(주로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 등 남부민족)이고, 로마카톨릭이 32%(주로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등 북부민족)이며, 회교도가 12%(주로 알바니아인), 기타 기독교, 유태교 순이다.
 
유고의 이러한 다양성과 복잡성은 발칸반도의 지리적 위치와 기구한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유고의 북부지역에 거주하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유럽문화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었고, 남부의 나머지 민족은 아시아적 전체국인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유럽과 아시아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분활되어 삶을 영위해 온 것이다.
 
이지역의 특수성을 살펴보면,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동(東)로마와 서(西)로마의 경계지역, 로마카톨릭과 그리스정교간의 경계선에, 게르만민족과 슬라브민족간의 경계선상의 전초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발칸반도의 역사적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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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지역은 항상 주변 강대국의 세력확대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민족의 지배하에 살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적인 처지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북부의 오스트리아와 남부의 오스만 터키는 발칸반도에서 3백년간 이상 대치하여 각축을 벌였으며,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러시아가 남진정책하에 부동항을 찾아 이지역에 발을 내딛기 시작함으로서 이지역은 치열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부의 슬로베니아는 1918년 1차대전이 종료되기 이전까지 오.홍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통치하에 있음으로 해서 역사상 한번도 독립을 가져보지 못하였으며, 특히 크로아티아는 12세기부터 1919년까지 헝가리, 오스만 터키, 오.홍제국의 지배를 번갈이 받아온 치욕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동남부의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니아는 14~5세기경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오.홍제국의 지배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산악지대의 몬테네그로민족만은 산악지역의 잇점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유고는 지리적특성이 외부로부터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접근이 용이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국토의 70%가 험난한 산악지대로서 지역간 왕래가 쉽지 않아 여러민족이 고립되어 살았다. 또한 이 지역 민족들간의 살육전의 역사도 아주 깊고 참혹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오.홍제국, 그리고 오스만 터키가 패배함으로써 1918년에 남부 슬라브민족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왕조를 건설하게된다.
 
해방과 동시에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으로 건국되었으며, 192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연방 공화국]으로, 1963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탈바꿈 하였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공화국은 슬로베니아 공화국, 크로아티아공화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 세르비아공화국, 몬테네그로공화국, 마케도니아공화국의 6개 공화국이었다.
 
 
 
신유고연방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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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고연방은 여러 다양한 민족들이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다른 배경과 다른 정치제도하에서 살아왔고, 언어마저 달랐으며, 각기 다른 종교를 믿어왔기에 하루아침에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고 일체감 있게 운영해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고연방이 1945년부터 45년간 비교적 안정된 연방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이나 국가개념보다는 계급개념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공산정치사상과 1당독재체제, 그리고 동.서냉전 등에도 크게 연유하였지만 무엇보다 카리스마적인 [티토] 대통령의 통치능력과 통치방식에 연유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80년 5월에 [티토] 대통령이 사망하자 유고연방은 공화국들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어 갔으며,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1990연대 들어와 소련공산당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자 유고연방에도 민주화바람이 급속히 불기 시작했다.
 
유고연방의 각 공화국들이 민주화를 서두르고  연방정부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민족간, 공화국간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내란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유고연방공화국들 가운데 정치의식과 경제분야에서 비교적 앞서 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제일 먼저 공산정권이 몰락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어 1991년 6월 26일 연방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1월에는 마케도니아가, 1992년 3월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하였고, 1992년 4월 27일 세르비아공화국과 몬테네그로공화국이 코소보(구자치주)와 함께 신유고연방을 결성함으로써 1945년에 출범한 유고연방은 종말을 고한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보스니아분쟁과는 어떤 관계인가?
 
신유고연방의 중심공화국인 세르비아공화국의 세르비아인들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의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연방군을 투입, 군사개입을 감행함으로써 유고연방이 처절한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세르비아공화국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구유고연방공화국들의 지역내에 흩어져 있는 세르비아계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대세르비아국의 건설을 추구하였고 지금도 이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세르비아인들은 회교도를 대상으로 [인종청소]라는 대규모 학살만행을 자행하였고 지금도 진행중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1992년 5월부터 3년 7개월 동안 4백50만명의 인구가운데 약 20만명의 사망자와 2백만명이 넘는 난민을 만들어 내었던 보스니아내전이 1995년 12월 14일 파리에서 보스니아회교정부, 크로아티아공화국, 그리고 세르비아공화국의 세 대통령들이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의 강력한 주도하에 보스니아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내전이 끝났다.
 
보스니아내전이나 코소보사태는 근본적으로 같은 성격의 민족간의 분쟁이며 세르비아인들의 대세르비아건설의 야심으로부터 초래된 사건들이다.
 


보스니아평화협정은 어떻게 타결을 보았는가?
 
보스니아평화협정안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는 현재의 국경선 내에서 회교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연방을 구성하여 영토의 51%를 차지하고 세르비아계가 공화국을형성하여 영토의 49%를 차지하여 회교계.크로이티아연방과 세르비아계공화국이 연방정부를 구성하여 단일 주권국가를 이룩한다. 나토(NATO)주도하에 미군 2만명, 영국군 1만3천명, 프랑스군 1만명을 비롯한 독일군, 러시아군 등 총 25개국의 6만명의 다국적평화유지군(IFOR)을 파견하여 휴전을 감시하고 보스니아의 전후 복구를 지원한다는 것 등이다.
 
 
 
보스니아평화협정으로 장래에 유고의 평화와 안정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세르비아공화국이 주도하는 연방체제를 유지하고 나아가 대세르비아국가를 건설하려는 세르비아인들을 한 구릅으로 하고, 세르비아인들의 지배를 거부하고, 세르비아인들이 주도하는 연방체제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를 이룩하기를 갈망하는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회교도들을 중심으로한 또 다른 구릅의 3파전으로 처절하게 전개되었던 유고내전은 미국과 NATO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다국적평화유지군의 파견으로 일단 끝났고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스니아의평화협정으로 유고의 안정과 평화가 유지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보스니아의 평화협정이 내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여러 민족간, 종교적 오랜 불화와 원한을 말끔히 해소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세르비아인들의 대세르비아국 건설의 오랜 꿈을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세르비아인들은 대세르비아국 건설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가?
 
세르비아인들의 대세르비아 건설의 꿈은 오랜 역사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정교를 신봉하는 세르비아인들은 6세기경부터 발칸반도북부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14세기경에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베로루시, 그리스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터키가 발칸반도에 진출하면서 1389년에 코소보전투에서 세르비아인들이 터키에 패배하여 북쪽으로 쫓겨났다.
 
그후 세르비아인들은 500여년간 터키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여러차례 반터키운동을 벌였으나 번번이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말았던 것이다. 19세기 오스만 터키의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자 세르비아인들은 발칸지역에서 대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다시 적극적으로 추구하였다. 세르비아인들이 이러한 대세르비아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인접국들과 세르비아인들간의 대결과 분쟁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소보사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코소보사태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끝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고는 NATO가 먼저 공습을 중단하면 평화협상의 재개에 응하겠다고 하고 있고, NATO측은 세르비아인들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행위를 중단하고 평화안을 수락하면 공습을 중단하겠다고 반복하고 있어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형상이다.
 
세르비아인들이 NATO를 상대로 버티는데는 물론 한계가 있지만,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고 NATO가 공습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도 역시 의문시 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베트남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미국의 입장으로서 상당한 인명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지상군의 투입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족이고 같은 동방정교를 신봉하며, 역사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고, 또한러시아와 중국역시 독립을 요구하는 심각한 소수민족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NATO의 군사개입, 특히 지상군의 투입에 반발이 예상 된다.
 
또한 NATO국들은 코소보사태가 발칸반도전쟁으로 확대되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코소보사태나 유고문제가 쉽게 타협되고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오랜 역사속에 민족,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 서 냉전이 종식된 현재 코소보사태가 발칸전쟁으로 혹은 강대국들간의 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동. 서 냉전기에는 유고내전과 같은 사태는 바로 미. 소 간 혹은  동. 서 진영간의 대결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았었다.
 
그 이유는 발칸반도와 한반도가 오랫동안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하나의 화약고로 인식되어 왔으며, 두지역이 모두 세력균형의 요충으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상군을 투입할 것인가?
 
미국은 현재 밀로셰비치의 의지를 꺽고, 코소보사태를 가능한 한 빠른 기간내에 종결시키기 위해 지상군을 투입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영향평가를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미국 국내의 여론의 향방도 가름하여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황의 진전에 따라 많은 변수가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투입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발칸반도의 지리적 여건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이 지상군투입의 관건이 될 공산이 크다. 코소보지역을 위시하여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지역 모두 험준한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어 지상작전에 많은 난관이 예상되며 장기전이 될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월남 장글전에서 패배한 미국으로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겠다.
 


나토, 유고투입시 지상군 예상규모 - 나토가 알바니아계 난민들의 귀환을 위한 지상군 투입시 나토가 동원할 수 있는 지상군병력규모는 얼마나 될까?
 
나토는 현재 코소보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마케도니아에 1만2천여명의 다국적 병력을 주둔시켜 놓고 있다.
 
나토 신속대응군 산하의 이들 병력은 당초 나토가 공습을 시작하기전 람부예 평화안에 따른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자치를 지원할 목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프랑스와 독일, 영국,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의 정예병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3백50여명의 미군병력이 포함돼 있으며 국경순찰 중 유고측의 포로가 된 3명의 미군도 이 부대 소속이다.
 
나토 신속대응군은 몇주전 독일에 있던 사령부까지 마케도니아로 이동시켜 놓았다. 나토의 지상군 투입이 어떤식으로든 이루어지게 되면 마케도니아 주둔 다국적 병력이 전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코소보에 투입되는 나토 지상군은 결국 미군병력이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 배치된 미병력은 냉전시대에는 한 때 30만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11만명으로 축소되어 있다.
 
유럽주둔 미군은 독일에 배치된 제1보병사단과 제1기갑사단 병력 7만여명과 이탈리아와 영국에 각각 배치된 1만1천여명과 1만여명이 주력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육군 6만5천여명, 공군 3만4천여명, 해군 1만여명, 특수부대 요원 1천여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지상군 투입결정이 이루어질 경우 신속하게 배치될 수 있는 부대는 이탈리아 비센차에 주둔한 경보병 공수여단 4천여명과 아드리아해에 배치된 제24해병원정대 2천여명, 육. 해. 공군의 특수부대 병력 1천여명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소보사태의 교훈
 
유고에서는 여러 민족들과 종교들간의 오랜 갈등과 유혈대결이 비극의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반하여 단일민족국가를  수천년 동안 유지해온 한반도에서는 민족간 혹은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없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면에 한반도는 동. 서 냉전과 정치이념의 대립으로 국토와 민족이 양분되었고, 동족상잔의 참극을 겪었고, 그리고 아직도 남북이 적대적 대치를 벌이고 있으면서 여전히 심각한 전쟁재발의 우려속에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세르비아족의 대세르비아주의와 특히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정치야심에 따른 다른 민족들과 종교에 대한 [인종청소]만행이 인도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처럼, 수령의 혁명과업 완수나 민족해방이라는 명분하에 북한이 기도하고 있는 무력남침노선도 반민족적. 반인도적 노선일 뿐만 아니라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노선이므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끝.
 
<국방일보 1999년 4월 2일~4일(2면) 국방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박사 전정환>



나토, 지상군투입 전략수립 착수
 
솔라나총장 지시
 
유고 코소보주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상군을 파병하기 위한 수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하비에르 솔라나 NATO사무총장은 21일 미국 워싱톤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NATO군사령관에게 지상군 투입전략을 새롭게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월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도 이날 하원 세추위원회에서 "(만약 전략이 수정된다면) 지상군투입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언 장관은 "NATO가 지난해 10울 유고 점령을 목표로 한 전면전에 20만명의 병력이, 코소보 점령의 제한전에는 7만 5천명의 병력이 소요될 것이라는 계힉을 수립한 바 있다"고 공개했다. 솔라나총장이 검토를 지시한 지상군 투입은 후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알바니아에 도착한 아파치헬기도 지상군투입을 전제로 한 것으로 사실상 지상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도 많다.
 
그러나 지상군 파병에 대한 미국과 NATO의 입장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조 록하트 미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솔라나 총장과 NATO군 지휘부가 지상군투입에 관한 기존의 전략평가를 수정하는 것이 옳고 신중한 길이라고 판단할 경우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몹시 복잡한 어법을 사용했다.
 
록하트 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은 지상군 투입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지상군 투입 결정이 가져올 국내외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등을 떼밀려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NATO내부에서는 현재 영국 프랑스 터키가 지상군 투입에 적극적이다. 특히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지상군 파병에 동의하기 어려운 처지다.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이 이에 반대해 파병이 강행되면 연정이 붕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워싱톤=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지상군투입 목적따라 나토軍 희생 큰차
 
美 군사전문가 시나리오 제시
 
난민보호 - 수십명
 
코소보해방 -  수백명
 
세르비아제압 - 수천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고에 지상군을 투입한다면 어느 정도의 병력을 투입해야 하며 NATO측 희생자는 얼마나 될 것인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전문가 마이클 오한론 연구원은 22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회견에서 "지상군 투입의 목적에 따라 병력과 NATO측 희생자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세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 알바니아계 난민 보호를 위한 지상군투입=필요한 병력은 3~5만명이며 이 중 3분의 1~ 5분의 2는 미군일 것이다. 그러나 유고군의 저항이 예상되고 지뢰밭도 통과해야 하므로 NATO측 지상군 수시병의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
 
∇ 코소보의 대부분 지역을 해방하는 한정적 지상전=필요한 병력은 10만~ 12만 5천명이며 미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유럽 각국에는 이 정도의 병력을 신속히 출동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나리오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유고군이 전투를 회피하려 할짇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고군이 격렬히 저항해 전투가 수주일 동안 계속되면 희생자는 걸프전쟁을 웃도는 수백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 세르비아 전역을제압하기 위한 전면적 지상전=NATO가 동원해야 할 병력은 20만명. 미군이 적어도 3분의 2, 경우에 따라서는 15만명을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희생자는 수천명에 이를 것이다. 유고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 지상전 준비기간과 조기투입 가능성=3만~5만명의 병력이라면 2, 3주간, 10만~ 12만 5천명이라면 1개월 이상 걸릴 것이다. 23일 NATO정상회담에서 지상군 투입에 합의하 가능성은 낮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나토機, 유고 대통령관저 폭격-밀로셰비치 무사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연방 대통령 관저가 22일 새벽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공군기들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완전히 파괴됐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가족들은 당시 관저에 없어 무사했다. NATO관리들은 밀로셰비치가 다른 벙커에서 밤을 보냈다고 전했다. 밀로셰비치는 또 한 채의 관저를 갖고 있으며 과거 세르비아왕이 사용했던 '화이트 팰리스(백궁)'를 공관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유고연방에 속해 있는 몬테네그로공화국의 밀로 듀카노비치 대통령은 22일 밀로세비치가 무력으로 몬테네그로 정부를 전복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유고연방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베오그라드.런던AFP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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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는데.. 국제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있다..
99년도에 코소보사태가 일어났을때.. 뉴스에서 많이 나오긴 했지만 사건의 배경등은 전혀 모르고있었는데..
대충 저런일이 있었던 것이군.. 누군가 그때 기사를 잘 정리해둔것 같다.. ㅋㅋ
정말 복잡한 역사를 가진 지역이군..

출처: http://user.chollian.net/%7Eyslee43/index06/kosobo.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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